함께 있어도 항상 그리운 나의 반쪽 노엘에게
화사한 꽃향기 가득 흩날리는 좋은 봄날에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결혼 19주년을 맞이하며 그 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조금은 직장생활이 익숙해지며 지루해질 무렵 복학 준비 중인 당신과 영어학원에서 만나 알콩달콩 서로를 알아갔지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잡은 손 놓쳐도 걱정할 겨를도 없이 금방 환하게 웃으며 다시 만나게 되는 당신을 보며 우린 정말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지요. 전화선을 타고 오는 다정한 말투와 성우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설레게 했고 함박 웃음 가득 띤 하얀 얼굴은 힘든 내 삶에 따뜻한 등불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철야철야” 근무로 “우린 함께 살아도 반평생밖에 함께 못하겠구나” 생각에 아쉬웠고 싸울 일이 있어도 하루를 쉬었다가 만나면 전투력이 상실되어 소가 닭을 보는 것처럼 무심하게 되었지요. 마음이 따뜻하고 자상한 당신은 나보다는 시댁이 우선인 효자였고 첫째가 태어나 출퇴근을 시댁에서 하게되니 독립된 결혼 생활보다는 시댁과 아이에게 묶여 부부의 삶은 없는 듯 하여 당신 사랑이 부족한 것 같아 짜증과 투정을 부리다가 지쳐갔어요. 둘째가 생겼고 첫째 때와 같이 산전검사는 당신의 근무로 또는 잠이 부족한 당신을 위해 혼자 다니며 남편과 함께 온 임산부를 보며 참 부러워했던 쓸쓸한 기억도 납니다. 첫째 낳을 때는 새벽에 근무중인 당신께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혼자 짐을 싸서 119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애를 낳았고 둘째 때는 진통을 호소하며 출근 안 하면 안되냐는 내 부탁에도 출근하는 뒷모습이 야속했지만 책임감 강한 당신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셋째가 생겨 우리 집을 가득 채웠지요. 어른들은 아이 키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육아와 가사일은 같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내 몫으로 남아 있어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당신이 없는 빈자리는 공허했어요. 내가 화를 내면 당신은 집에서 매일매일 집안일을 돕고 있다고 했지만 당신이 말하는 매일매일은 “철야철야” 근무로 하루건너 하루였고 당신이 없는 하루는 온전히 제 몫이 였는데 내가 더 힘들다는 수고로움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더 속상했지요. 그러던 중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당신이 수송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몇 달 뒤에나 알고 나서 사고라도 날까 봐 가슴 조이며 이민을 가자고 했지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선뜻 내 의견을 지지해 준 것만이라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나고 고마웠어요. 그러던 중 관제업무로 전배가 되고 근무도 “주주야야비휴”로 변경되면서 집에서 항상 졸려하며 부족한 잠으로 고생하던 모습이 조금씩 나아졌어요. 셋째를 어깨에 무등을 태우고 양손에 첫째 둘째 손잡고 어린이 집에서 데려오는 모습을 본 엄마들은 저를 부러워했고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 딸로 태어나고 싶을 만큼 좋은 아빠였지요. 하지만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하자 친구에게 투자를 했고 잠시 여유 돈이 생기는 듯 했지만 망해버려서 친구도 돈도 잃어버린 당신은 거의 집에 없는 듯 했고 주말에는 성당에서 종일 보내다 왔지요. 저 또한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은 외면한 채 성당으로 회피하는 당신에게 등을 돌려 버렸어요. 때마침 층간 소음으로 아래층과 다툼이 생겼고 아이들이 내는 소음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했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조차 가슴을 쿵 내려앉게 되었지요. 아래층에서 항의가 오면 아이들은 아빠한테 맞을 까봐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방에 숨었지요. 집은 마치 담장이 허물어져 추운 겨울 세찬 바람을 더 이상 막아주지 못하는 폐허가 된 것 같았어요. 그렇게 얼마가 흘러 이사를 했지만 초등 4학년이던 첫째 아들은 학교 적응을 못해 담임선생님의 면담요청이 왔지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말문을 닫아버린 후였고 부모상담 교육도 참석해 보았지만 그 때뿐이었고, 매달 가족여행도 갔지만 올 때마다 다시는 안 온다며 화를 내는 당신을 보며 끝없는 사막에서 홀로 길을 잃은 듯 막막했어요. 어머님께서 성당에서 하는 첫 영성체 교육을 권유해 주셨고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을 데리고 매주 수요일 저녁에 밤 산책을 나가듯 성당을 다니면서 오가는 길에 소소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하고, 제가 바쁠 땐 당신이 대신 가주기도 하며 같은 팀이 된 듯 소속감을 느꼈어요. 그렇게 꾸준히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성당의 좋은 교육 프로그램인 Marriage Encounter를 참여하여 혼인한 부부로서의 삶을 되새겨보며 우리 사이에 그 동안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 앙금을 털어 버리고 나니 발에 맞지 않은 작은 신발을 벗어버린 듯 후련하고 편안해졌습니다. 방문만 열어도 나가라고 소리치던 둘째 아이가 거실 소파에서 큰 방 침대로 나와 함께 하게 되고 사회 공헌팀으로 이동 한 당신을 이제 매일 퇴근하면 볼 수 있겠구나 기대에 부푼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는 당신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적응하느라 그렇겠지 하며 100일을 또 일년을 기다렸지만 계속되는 야근에 화가 나기보다는 건강조차 잃게 될까봐 오히려 걱정되었어요.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열중해서 즐겁게 일하는 당신을 보면 부럽기도 했답니다. 가끔 부서 가족행사에서 당신 동료들이 당신 칭찬하는 것을 들을 때는 양 손에 과자를 가득 쥐고 있는 것처럼 흐뭇했고 혹여 동료들보다 초라해 보일까 걱정되어 와이셔츠도 다려주고 점점 넓어지는 이마로 나이가 많아 보여 머리스타일을 바꿔보자고 하면 흔쾌히 미용실을 따라나서는 제 말을 잘 들어주는 당신은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랍니다.
19년이란 긴 세월 이젠 대학생, 고등학생, 막내 중학생 아이들은 다 각자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고 있고 주워온 개 한 마리만 반갑게 맞아주지만 참 애쓰며 살아왔어요.
함께 한 날보다 함께 할 날이 더 많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랑한다는 말이 허공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고 가슴 속에 들어 올 수 있게 저도 활짝 열고 있을께요. 유한한 우리의 삶이 다시 설렐 수 있고 서로를 더 빛나게 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요.
당신과 항상 오래도록 같이 하고픈 사랑스러운 당신의 아내 노엘라가
사랑이 뜨거운 여름 햇빛에 큰 그늘을 만들어 내는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풍성하고 너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세상에 법이 없어도 잘 살아갈 이타적이고 충실한 노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두분을 천생연분으로 그렇게 맺어 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