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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주득진
 
2023-02-27

사랑하는 나의 친구 뽈리나에게--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20색상표에서  보색관계를 외운 적이 있습니다.

빨강+청색노랑+남색녹색+자색 ....

보색대비.. 서로의 색을 방해하지 않고 가장 순수하고 생기 있게 느낄 수 있게 한답니다.

당신이 있어 내가 돋보이고 나로 인해 당신이 더 생기를 찾는 것 같아 그 점이 사랑스럽습니다.

 

결혼 30주년을 맞는 해에

계속 살아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여기에 당신과 함께라는 문구를 넣어 편지를 씁니다.

 

배 두 척이 멀리 대양까지 항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같은 목표점

둘째각자 배에 충분한 연료와 식량

셋째배 두 척 사이의 적당한 거리

 

첫째둘째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세 번째는 선뜻 다가오지 않습니다.

적당한 거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

너무 가까우면 배끼리 부딪힐 수 있고멀다면 안개 속이나 갑작스러운 바람으로 서로를 잃을 수도 있겠지요그런데 부부사이에도 이게 적용되는 건가?’ 의아했습니다.

내게 가까이 붙인다는 뜻은 상대방을 나에게 동일시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고

너무 멀게 두는 것은 무관심이나 열정의 사라짐으로혼인한 독신이 되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배우자의 영육간의 건강을 돌보고지금 괜찮은지 물어보고 격려하되

나와 동일시하여 내가 좋은 것을 강요하거나 집착하고 구속하지 않는 것이 부부가 함께 멀리까지 항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20살 열정으로 만나 그 때는 비슷한 점 하나만 발견해도 천생연분의 증거를 찾은 듯 기뻐했지요.

30, 40 함께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들 챙기면서 하고 싶은 것 억제하고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년을 이렇게 해라너는 왜 그래?, 아니야이쪽이야사회나 집에서도 책임이나 의무 성과로서 답해야 했기에 제대로 용서도 못하고 위로도 못 받았지요.

 젊었는데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또 채 아물기 전에 의무를 강요받았기에 물 없는 화분의 꽃처럼 시들어 갔습니다.

 이제 50을 넘기며 비로소 뿌연 안개가 걷히며 오솔길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아직 보슬비는 계속 내리지만불어오는 바람에 안개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안개가 걷히고이내 햇살이 숲 속 가득히 채워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계속 살아가고 싶은 이유는

당신이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 애띤 단발의 당신은 하얀 미사 보처럼 예쁘고

서른 살의 당신은 초보 엄마와 며느리로서 좌충우돌 종종거리며 노력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마흔 살의 당신은 직장 선배로 후배를 챙기고집에서는 아이들을 믿어주고 격려하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였지요.

장생활이나 가족관계에 여전히 피곤한 면이 있었지만

처리하는 요령도 알았기에 적당한 성과를 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줄 아는 가성비 훌륭한 당신이 믿음직했습니다

이제 쉰 살의 당신은 자유로워’ 보입니다.

33년의 오랜 교직 경력속에후배들의 사랑을 받고아이들이 좋아하는아이들을 이뻐하는 담임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에서는 두 아들들을 여전히 염려하고 궁금해 하지만 거리를 둡니다

두 분 어머님께도 여자로서 인간적인 연민과 친밀함을 표현하는 당신이기에 한겨울 캠핑장의 모닥불처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도 10여년 전 ME주말 체험을 한 후 시각의 전환과 행동의 수정으로 모난 돌이 둥글둥글 몽돌이 되어 일상의 밀려드는 파도를 챠그락 챠그락 받아주며 반짝이는 여유도 갖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당신은 그 때 보다 열 배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 배우자와 가족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 이기적으로 우리 가족을 떠올렸습니다죽음에 대한 생각은 가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어야지요.

언제인지 몰라도 그 때는 올 겁니다.

너무 황망하고 슬프고 무섭고 그럴 겁니다.

그러니 지금 더 사랑해야겠네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으로 만나 기쁘고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다툼과 불평으로 힘든 시간이 길었습니다.

더욱이 사업에 실패하고 빈 털털이가 되었을 때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왔고

나도 지치고 당신도 지쳐

장마철에 에어컨이 고장 난 출근 지하철을 타고 갈 때처럼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

ME의 주말체험 속에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걸까요?

정말 극적인 감동을 주시려고 우리 부부를 그리 힘들게 하셨을까요?

분명한 건 어려움이 컸었기에 감사함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려움을 겪었기에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아마도 주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무슨 계획은 있으셨던 듯 싶습니다.

같은 이상을 가진 ME 가족들을 만난 것도 신나는 일이고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주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파도가 잔잔한 만이 나오고 작은 섬을 만나기도 한답니다.

그 섬에 내려 물과 식량도 새로 싣고

부서진 배도 수리할 것입니다.

ME주말이 제게는 그 작은 섬과 같습니다.

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은 더 큰 채워짐과 치유로 감사하게 됩니다.

당신과 함께 해서 동기가 부여되고 더 큰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내 옆을 지켜주는 당신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지요.

이것이 당신과 계속 살아가고픈 이유입니다.

 

이제 작은 섬을 출발해서 다시 항해는 이어질 것입니다.

다시 비바람도 만나고살갗을 다 태워 버릴듯한 뜨거운 태양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또 다시 후회 할 때도 있겠고당신을 원망할 때도 있겠지만

오늘이 이감동과 추억이 큰 버팀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함께 해주어 고마웠고

함께 해 줄 것을 알기에 마음 든든하고 더욱 가슴 벅찬 오늘입니다.

 


가만히 눈감고 당신을 봅니다.

 

 

                                                                         2023.         2.          12.

 

                                                                  당신을 사랑하는 라파엘로 부터

 

  

PS 결혼 30주년을 진심 감사하며 자축하고

새로이 다가올 30년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함께 출발 합시다 ^^

댓글
정석
 
2023-03-10 13: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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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랑의 편지입니다. 읽는 내내 감동으로 마음이 몰캉몰캉해졌습니다. 아름다운 두분을 응원합니다. ^^
이석화
 
2023-03-17 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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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사랑의 편지 수신인입니다. ㅋㅋ 나도 동감이구요,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ME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요.
고유경
 
2023-03-22 18: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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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두분이 더 사랑스러워지네요.
우리 같은 섬에 머물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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